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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황인물

 《회덕황씨세보(懷德黃氏世譜)》에 의하면 시조 황락(黃洛)은 한나라 유신으로 교지국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신라에 표착하여 회덕에서 살았으므로 회덕에 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조에서 지문성부사를 거쳐 호부상서에 이르고 좌명공신으로 회천군에 봉해진 황윤보(黃允寶)를 1세조로 하고 있다.

1세조의 묘소는 충남 대덕군 동면 마산리 관동에 있다. 회덕황씨는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자후(黃子厚)·황종해(黃宗海)·황세정(黃世楨) 등을 들 수 있다. 혜의공(惠懿公) 황자후는 음보로 인녕부윤을 거쳐 1413년(태종13) 형조좌참의가 되어 호패법을 건의하여 시행케 하였으나, 그후 소합유의 진상에 부정이 있었고, 또 환상미의 부정 처분으로 회덕·진주 등지에 유배되기도 했다. 이듬해 호조참의로 종마관압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여러 관직을 거쳐 1421년(세종3) 좌군총제가 되어 정조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한성부윤·중추원부사를 역임, 1425년(세종7) 첨구전문업의 설치를 건의했으며, 중추원사에 올라 전의감 제조를 겸임했다.

황종해는 황덕휴의 아들이며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611년(광해군3) 유생들과 함께 상소하여 정인홍(鄭仁弘)의 전횡을 논박했고, 1613년(광해군5) 폐모론이 일어나자 과거를 단념, 1618년(광해군10) 연산 김장생(金長生)을 찾아가서 예학을 강의 받았다 1628년(인조6)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632년 최명길(崔鳴吉)의 추천으로 영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저서에 《후천집(朽淺集)》이 있다.

그의 아들 황유(黃裕)는 태종의 부마로 회천위에 봉해졌다. 후천(朽淺) 황종해는 정구(鄭逑)의 문인이며, 덕휴(德休)의 아들로 광해군 때 유생들과 함꼐 상소하여 정인홍(鄭仁弘)의 전횡을 논박했고, 폐모론이 일어나자 과거를 단념, 김장생(金長生)에게서 예학을 배웠다. 인조반정 후에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제곡(齊谷) 황세정은 송준길(宋浚吉)의 수제자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고, 또 송시열(宋時烈)에게도 사사했다 숙종 원년에 제2차 예송이 일어나 송시열과 이미 죽은 송준길이 화를 입자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윤휴일파의 죄상을 규탄하다가 진도에 유배되었다. 경신대출척 때 풀려나와 연풍현감이 되었으나 송시열이 사사되자 이에 비분, 벼슬을 떠나 학문에 전념했다.
뒤에 김창집(金昌集)의천거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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