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朝玉佩 桴海而東 克開克昌 萬世爲宗

                國譯:중국조정에서 벼슬을 하시고 월남 사신으로 가시다가 풍랑을 만                                나 뗏목을 타시고 신라 동쪽 월송에 정착 하시어 능히 자손을 번                                창하게 하시었으니 황씨는 몇 만년을 내려가더라도 한 가족이다.

                             文獻:柳成龍記事,平海黃氏族譜,韓國姓氏大觀,平海郡誌

 

 

 

 

 

 

 

 

 

 

 

 

□ 반고(盤古)
  반고는 1만 8천년을 잠만자다가 도끼로 잠자던 우주의 껍질을 깨었다. 가벼운 물질은 위로 올라가고, 묵직한 것은 아래로 가라앉았다. 서로가 붙으려고 하는 것을 반고가 가벼운 물질을 손으로 쳐들고, 무거운 것을 발로 밟아 자기의 티를 하루에 1장(丈,약 3m)씩 키워 자기 키를 1만 8천년을 늘려 천지간의 거리가 9만 리가 되었다. 그리고는 반고가 쓰러졌다. 그가 헐떡거리는 입김은 하늘의 구름이 되고, 그가 지른 고함은 뇌성벽력, 번갯불을 만들었다. 반고는 죽으며, 왼쪽 눈알로 태양을 만들고, 오른쪽 눈알로 달과 별로 변화시켰다. 피는 큰 바다와 호수의 물이 되었고, 뼈다귀는 산맥, 털은 식물이 되었다. 그의 땀과 눈물은 아침 이슬이 되었다.

 □ 여와
  반고가 천지를 창조하고 많은 날이 흘렀다. 여와라는 신이 심심해서 땅에 내려와 봤더니, 인간만이 없더라는 것이다.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래, 저런 걸 만들어 주자'하고 누런 진흙을 빚어서 애를 낳았다. 몇 개를 더 만들었으나 성이 안찼던지, 한가닥 칡넝쿨을 잘라 그것으로 진흙을 휘갈겨 진흙방울이 사방으로 튀어나간 그것이 죄다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물의 신 공공(共工)과 불의 신 축융(祝融) 간에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졌는데, 공공은 제 성질을 못 참아 부주산(不周山)에 박치기 했다.그로인해 땅이 기울어져 난리가 났다. 물이 들끓어 홍수가 나고, 덩달아 흥분한 괴수들이 사람들을 해쳤다. 사람을 만든 여와가 분주히 물을 퍼내어 인명을 구출하는 한편 괴수를 퇴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고장난 하늘 구멍에 오색 돌을 갈아 메워서 고치고, 기울어진 땅을 바로잡기 위해 바다에 사는 거북이에게 네 다리를 얻어 그것으로 사방의 땅을 고여 바로잡아놨다. 좀 서두르는 바람에 중국의 서북쪽은 높고 동남쪽은 우묵하게 낮은 이유가 되었다.

 □ 신예(神 )
  세상의 동쪽 끝에 아주 높은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 그늘에 천제(天帝)의 아들 열 명이 있었다. 그들은 다리가 셋 달린 황금 새였다. 하루에 한 놈씩 번갈아 가며 하늘에 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태양이라 하였다. 천제의 아들들이 장난기가 발동해 열 명이 한꺼번에 날아버렸다. 하늘과 땅이 펄펄 끓고, 농작물은 타죽고,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지상의 성왕인 요(堯)가 천제께 빌어 천제는 천신(天神) 예에계 특명을 내렸다. 신예는 자기아내 상아와 함께 지상에 내려와 황금새를 사냥하기 시작하였다. 화살 열개중 하나를 요임금이 감춰 다행히도 하나의 태양은 남게 되었다. 괴조.요괴.구렁이를 죽였다. 천제는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고하여 신(神)의 자격을 박탈하고, 인간이 되게 하였다. 상아와 신예는 사람이 되었고, 곤륜산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구하였다. 그러나 불사약은 두알 밖에 없었고, 하나를 먹으면 죽지 않고, 두알 다 먹으면 하늘에 오를 수 있다고 하였다. 아내 상아는 남편 신예가 잠든 틈에 두알은 다 먹어버렸다. 그러나 천제의 벌을 받아 한 마리 추한 두꺼비가 되어 보름달 속에 뚜렷이 엎드려 있게 되었다.

 복희 - 포락과 문자를 만든 신
  수인씨는 화식하는 방법의 발명자로서 알려져 있으나, 복희씨 또한 그와 무연 하지는 않다. 그의 이름은 포희(暑羲) 또는 포희(敍羲)라고 쓴다. 이런 이름은 [희생을 길러서 포주(敍廚)에 가득 채운다]라든가 [희생을 포락(暑烙 - 굽고 지짐)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니까 인간들에게 동물의 고기를 지지고 볶고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한 역(易)의 8괘를 만들어 인간사회의 길흉을 점치고 문자를 발명했으며 그물을 짜서 생선이나 짐승을 잡는 기술을 고안했고 다시 여와를 아내로 삼아 둘이서 혼인의 예를 정했다고도 전한다.

 수인 - 집과 불을 만든 신
  수인씨(燧人氏)의 이름은 삼황(三皇)의 하나로 헤아려지고 있으나, 여기에 유소씨(有巢氏)를 선행시켜서 인간생활의 진보를 설명하려는 합리적 신화도 있다. [한비자]를 보면, 상고시대에는 인간이 적어서 금수충사(禽獸蟲蛇)의 해로 많은 괴로움을 받고 있었다. 이때 유소씨가 출현해서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그 재해를 피하게 해주었다. 또한 백성이 날것으로 초목의 열매나 조개 등을 먹어서 위장을 해쳐 병에 잘 걸렸다. 수인은 다시 부싯돌을 사용하여 불을 일으키고, 먹을 것을 익혀서 비린내를 제거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소거생활(巢居生活), 화식생활의 개시를 상징하는 신들이다.

 신농 - 농상업과 의약의 신
  신농(神農)도 삼황의 한 사람으로 헤아려진다. 즉 염제(炎帝)인 신농씨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우선 농업의 신이 다. 염제 즉 태양의 신이기도 한 그는 인간들에게 괭이를 만들어서 땅을 일구는 방법을 가르쳤다. 태양의 광열에 의해서 오곡을 풍요롭게 결실시켜서 인간의 식생활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태양이 중천에 오르는 한낮을 눈금으로 해서 사람들을 시장에 모이게 하여 교역을 하는 길을 가르쳤다. 이 점에서의 그는 상업의 신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또 의약의 신으로서도 받들어졌다. 태양은 원래 건강의 원천이므로 태양신인 그가 건강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산야를 헤메다가 신통력을 갖춘 붉은 채찍으로 약초를 때리면서 각자의 풀이 지닌 독성의 유무 라든가 각종 효능을 분별해서 인간의 병치료에 소용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는 맹독이 있는 단장초(斷腸草)를 핥아보았기 때문에 장(腸)에 탈나서 그 생명을 회생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신농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운명은 서로 엄청나게 달랐다. 한 딸은 다만 [신농의 소녀]라고만 불리었을 뿐 그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 밑에서 비를 관장하는 관리노릇을 하다가 뒤에 지극한 수련을 닦고 선인이 된 적송자(赤松子)의 선술(仙術)에 반해서 자신도 그 뒤를 쫓아 여선인(女仙人)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 딸은 여와(女와)라 했다. 나이가 아직 젊었던 그녀는 어느 날 동해에 목욕하러 나갔다가 그만 큰 파도에 쓸려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 너무도 억울했던 그녀의 영혼은 정위(精衛) 라는 작은 새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하여 발구산 (發鳩山) 이라는 산에서 살았다. 정위는 자기 명을 앗아버린 동해에 대해 원한을 품고, 가련하게도 끝까지 동해에 대한 보복에 큰 뜻을 품었다. 날마다 서쪽 산에서 조약돌이나 작은 나무가지를 입에 물고 와서는 큰 파도가 밀려오는 동해의 물결 사이에 떨어뜨리며 동해를 메워 버리려고 결심하는 것 이었다. 이것이 정위전해(精衛塡海), 즉 정위가 바다를 메우려한다는 고사이다. 일반적으로 무모한 일을 기도하여 헛된 고생을 되풀이하는, 소위 도로(徒勞)로 끝나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 다른 견해로 보자면 일의 성부(成否)를 도외시하고 오직 자신이 세운 뜻밖에 굳건히 매진하다가 죽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신농씨의 또 한 딸은 요희라고 했는데, 여와(女와)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정열적인 소녀였다. 나이가 차서 처녀티가 날 무렵, 아직 이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고요산이라는 산 중턱에 예쁘고 가련한 노란꽃이 피어 열매를 맺었다. 이 한 그루의 요초(瑤草) 야 말로 그녀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이 풀꽃의 열매를 따먹은 자는 누구나 반드시 이성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어린 나이에 죽어간 요희의 운명을 가엾이 여긴 천제가 이윽고 그녀를 사천성에 있는 무산(巫山)으로 보내어 구름과 비의 신으로 봉했다. 그로부터 그녀는 아침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구름으로 화하여 산마루 위를 넘나들고 저녁 무렵에는 구슬픈 비가 되어 골짜기와 산기슭을 적셨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품었던 자신의 애달픈 정열을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후세에 이르러 전국시대의 말엽에 초나라 회왕(懷王)과 또 그 뒤의 그의 아들 낭왕(囊王)이 운몽택이란 연못에서 놀다가 고당대(高唐台)에서 잠시 쉬며 잠들었을 때, 그 꿈속에 환영처럼 나타난 무산의 여신 요희가 타는 듯한 정열을 바쳐 사랑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초나라의 궁정 시인 송옥(宋玉)에 의해서 세상에 전해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