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朝玉佩 桴海而東 克開克昌 萬世爲宗

                國譯:중국조정에서 벼슬을 하시고 월남 사신으로 가시다가 풍랑을 만                                나 뗏목을 타시고 신라 동쪽 월송에 정착 하시어 능히 자손을 번                                창하게 하시었으니 황씨는 몇 만년을 내려가더라도 한 가족이다.

                             文獻:柳成龍記事,平海黃氏族譜,韓國姓氏大觀,平海郡誌

 

 

 

 

 

 

 

 

 

 

 

 

 

 

bullet_pieces.gif 황승언(黃承彦):제갈량의 장인. 양양의 명사로써 고결하기로 이름높았다. 같은 양양의 명사인 채모의 누이와 결혼하여 태어난 추녀인 딸을 '미인은 아니지만 머리가 비상하다'며 제갈량에게 출가시켰다.

bullet_pieces.gif 황완(黃琬):동탁의 막료.동탁이 전횡할 때 태위로 있으면서 그의 장안 천도에 반대하여 파면당했다. 그러나 함께 간했던 오경, 주필 등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무서운 나머지 동탁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bullet_pieces.gif 황규(奎):후한의 충신인 완(琬)의 아들로서 조조아래서 문하시랑으로 있었는데 서량태수 마등을 접대하는 책임을 맡아 본심을 털어놓고 일을 꾸미려하였으나 데리고 살던 첩 이춘향의 간부 묘택의 밀고로 대사를 그르치고 마등과 함께 일족이 멸문당했다.

bullet_pieces.gif 황조(黃祖):유표의 장수. 원술의 명령을 받고 토벌하러 온 손견을 맞아 싸워 그를 현산에서 죽였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어서 강하태수로 있을 때 유표가 사신으로 보낸 미형의 불손한 태도에 화가 나서 그를 죽였다. 208년, 손권과 싸우다 죽었다.

bullet_pieces.gif 황충(黃忠): ?~220 ●출신지 : 남양군●직위 : 중랑장 - 정서장군 - 후장군●영웅성 : ★★★★★ 유비의 장군. 자는 한승(漢升). 남양군 사람. 원래 유표 휘하에서 장사를 지키고 있었으나, 적벽대전 이후 유비에게로 가서 무공을 세워 토로장군이 되었다. 218년에 한중을 공격할 때는 정군산에서 조조이 장수 하후연을 죽여 정서장군이 되었다. 같은 해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후장군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노익장'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bullet_pieces.gif 황개 공복(黃蓋 公覆 ?~?) ●출신지 : 영릉군 천릉현 ●직위 : 군 관리 - 무봉중랑장 - 편장군 ●영웅성 : ★★★★★ 오의 장수. 손견때부터 충성스런 대장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스스로 주유를 찾아 고육계를 쓸 것을 헌책. 항복하는 문서를 조조에게 보내 적벽전 승리의 계기를 만들었다. 싸움에는 선봉이 되어 싸우다가 장료가 쏜 화살에 맞아 물에 빠졌으나, 본시 헤엄의 명수라 엄동에 갑옷을 입은 채였건만 살아나 다시 활동하였다.

bullet_pieces.gif 황권(黃權):익주 유장 휘하에 있다가 유비에게 귀순하였으나 나중 위로 투항했다. 처음에 장노의 침입을 앞두고 법정, 맹달 등이 유비를 불러들이자는 의견을 냈을때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유장이 항복한 뒤로 버티다가 유비가 친히 찾아와 권하는 바람에 나와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오에 출병하였을 때는 수군을 통솔하였는데, 육손의 반격으로 대패하자 위에 항복하였다. 조비는 그에게 벼슬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으며, 제갈량도 그의 가족을 해치지 않았다.

bullet_pieces.gif 황호(黃皓):촉한의 환관이며 간신. 암우한 유선의 주변에 인의 장벽을 쌓고 그의 눈과 귀를 가려 간사하게 굴고 주색에 파묻히게 하였다. 강유가 위병과 싸워 연전연승하였을 때도 까닭없이 불러들여 시기를 놓치게 했고, 위군의 침입까지 속여서 알리지 않았다. 위장 등애도 그를 죽이려 했으나 뇌물과 간사한 말로써 목숨을 보전하였다. 그러나 유선을 따라 낙양으로 옮겼을 때 그를 보고 사마소는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는 백해무익한 놈이라고 무사를 시켜 능지처참케 했다.

bullet_pieces.gif 황월영(黃氏夫人):제갈량의 부인. 잘 알려져 있듯이 황아추(黃阿醜: 생몰년 미상)는 면남(沔南)의 명사인 황승언(黃承彦)의 딸이다. 제갈량이 남양에 있을때 황씨부인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 몹시 추하고 보잘것 없었음에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실상 내조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한다.연의에서는 그녀가 자주 등장하지 않아, 그녀에 대한 많은 내용은 담고있지 않다. 그런데, 촉이 멸망하기 직전에 유선이 제갈첨을 출병시킬때에, 그를 소개하는 김에 두세마디 언급하고 있다. "무후의 하들 제갈첨은 자를 사원이라 하고, 그 어머니 황씨는 황승언의 딸이다. 그녀의 용모는 매우 추했지만 기재(奇才)의 소유자였다. 위로는 천문에 능통하고 아래로는 지리에 밝아, 육도, 삼략, 둔갑의 병서류는 하나로 꿰어 통하지 않는것이 없었다. 무후가 남양에 있을때에 그녀가 현명하다는 것을 전해듣고 처로 삼았다. 무후의 학문은 부인의 도움을 얻은바가 컸다. 무후의 사후에 부인도 뒤이어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맞아 그 아들 첨에게 남긴말은 '충효에 힘써라'라는 말이었다.

bullet_pieces.gif 황보숭(皇甫嵩) ?-195년:후한말의 용장. 자는 의진(義眞). 조나 사람.184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하진을 대장군에 임명하여 토벌을 명했다. 이때 북지군태수로 있던 황보숭은 군신 회의 석상에서 당고의 금지를 해제할 것과 황제의 사유 재산 및 마필을 방출하도록 주장했다. 이것이 용납되자 그는 좌장군으로 출전하여 장사, 여남, 영천, 진국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고 평정했다. 188년, 서북에서 일어난 반란군에 의해 진창이 포위되자 좌장군으로 기용되어 전장군인 동탁과 함께 이를 물리치게 되었다. 이때 동탁과 두 번에 걸친 병법 논쟁이 전개되었는데, 실전에서 적에게 파괴적인 타격을 주어 자신의 옮음을 증명했다. 이로써 동탁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같은 해 조정이 동탁의 군권을 빼앗기 위해 전장병을 황보숭에게 인계할 것을 명했으나 동탁은 두 번이나 이를 거부했다. 이 사실은 동탁의 원한을 더욱 사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동탁이 실권을 잡자 황보숭을 죽이려고 장안 서쪽에 주둔하고 있던 그에게 낙양 출두를 명했다. 이때 부관인 양연이 동탁을 토벌하자고 했으나 듣지 않고 출두하여 그에게 사로잡혔다. 다행히 처형되기 직전 동탁과 친했던 아들 견수의 탄원으로 후에 공중 앞에서 동탁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고 말았다. 동탁이 죽은 후 태위가지 승진했다가 병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