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朝玉佩 桴海而東 克開克昌 萬世爲宗

                國譯:중국조정에서 벼슬을 하시고 월남 사신으로 가시다가 풍랑을 만                                나 뗏목을 타시고 신라 동쪽 월송에 정착 하시어 능히 자손을 번                                창하게 하시었으니 황씨는 몇 만년을 내려가더라도 한 가족이다.

                             文獻:柳成龍記事,平海黃氏族譜,韓國姓氏大觀,平海郡誌

 

 

 

 

 

 

 

 

 

 

 

 

 

1.우(禹)
  
黃姓의 태고세계도를 고찰하면서 중국의 夏나라 임금이 黃姓의 선조임이 확인되고 하(夏 : 우임금이 봉해진 나라의 이름)나라는 黃國에서 파생된 왕조임이 나타난다. 우는 이름이 문명(文命)이다. 우의 부친은 곤이며, 곤의 부친은 전욱이다. 전욱의 부친은 창의이고, 창의의 부친은 황제이다. 우는 황제의 현손이며 전욱의 손자이다. 우의 증조부 창의와 부친 곤은 모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었다.  우가 순에게 등용되었을 때, 익, 후직과 함께 순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치수공사를 맡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치수사업에 실패하여 처벌받았고, 우는 이것을 슬퍼하였기때문에 노심초사 부지런히 일하느라 밖에서 13년을 지내면서도 자기 집 대문 앞을 지나가며 감히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총명하고 의욕이 왕성하며 매우 부지런하였다. 그 덕은 어김이 없었고, 인자하여 친애할 수 있었으며, 말은 신용이 있었다. 말소리는 음률처럼 화기애애하였고, 행동은 법도에 맞았으며, 사리판단을 잘하여 일을 처리하고, 부지런하고 엄숙하여 백관의 모범이 되었다. 우는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구도(九道)를 소통시키며, 구택(九澤)을 축조하고, 구산( 九山)에 길을 뚫었다. 기주에서부터 시작하여, 연주, 청주, 서주, 양주(揚州), 형주, 예주, 양주(梁州), 옹주를 개척했다. 견산, 호구산, 지주산, 태행산, 서결산, 웅이산, 파총산, 내방산, 문산을 소통시켰다. 약수, 흑수, 황하, 양수, 장강, 연수, 회하, 위수, 낙수를 소통 시켰다.  순임금은 하늘에 우를 천거하여 계승자로 삼았다. 70년이 지나 순임금이 붕어하였다. 삼년상이 끝나자 우는 제위를 사양하고 순의 아들 상균을 피하여 양성으로 갔다.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상균을 떠나서 우를 알현하러 왔다. 우는 그제서야 천자에 즉위하고 남면하여 천하 신민의 알현을 받았으며, 국호를 하후(夏后)라고 하고, 성을 사씨라고 하였다. 우임금은 즉위하자 고요를 하늘에 천거하여 정권을 그에게 넘겨주려고 하였으나 고요가 죽었다. 그는 고요의 후손을 영(英)고 육(六)에 분봉하고 혹은 허(許)에 봉하였다. 그후에 익을 천거하여 정사를 맡겼다.

2.계(啓)
  우가 즉위한지 10년이 지난 후 동쪽을 순시하다가 회계에 이르러서 붕어하였다. 우는 천하를 익에게 넘겨주었다. 삼년상이 끝나자 익은 우임금의 아들 계에게 제위를 양보하고 자신은 물러나서 기산의 남쪽에서 살았다. 우의 아들 계는 현명하여 천하가 모두 그에게 마음을 돌렸다. 우임금이 붕어하며 익에게 천하를 넘겨주었지만, 익은 우임금을 보좌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천하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제후들은 모두 익을 떠나서 계를 알현하고 "우리의 왕 우임금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계가 천자에 즉위하였으니, 이 이가 바로 하나라의 계임금이다. 유호씨(有扈氏)가 불복하자 계는 그를 토벌하려고 출전하여 감(甘)에서 크게 싸우게 되었다. 전쟁에 임박하여 계는 감서(甘誓)를 짓고 육군(六軍)의 장수들을 소집하여 훈계하였다. 마침내 계가 유호씨를 멸망시키자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와서 알현하였다.

3.태강(太康)
  하나라 계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태강이 즉위하였다. 태강임금은 사냥과 음악에 탐닉하여 국정을 돌보지 않았으므로, 유궁씨(有窮氏)의 왕에게 쫓겨나 돌아오지 못하여, 나라를 읽어버리게 되었다.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낙수의 북쪽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오자지가(五子之歌)를 지었다.

4.중강(仲康)
  태강임금이 붕어하자 동생 중강이 즉위하였으나 이 이가 바로 중강임금이다. 중강임금이 제위에 있을 때 사시(四時)를 주관 하는 희씨와 화씨가 지나치게 음주에 빠져서 계절과 일력을 어지럽혔다. 이에 윤(胤 : 중강의 대신)이 그들을 정벌하고 윤정(胤征)을 지었다.

5.상(相)
  중감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상이 즉위하였다.

6.소강(少康)
  상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소강이 즉위하였다. 좌전(左傳) 등의 기록에 의하면, 소강은 하나라 중흥기의 임금이다. 후X(后X)가 집권할 때, 상임금은 상구(商丘)로 도망가서 동성인 제후 짐관씨와 짐심씨에게 의탁하였는데, 한X이 후예를 죽여서 제위를 탈취하고 요와 희를 낳았는데, 요는 짐관씨와 짐심씨를 멸하고 상임금을 시해했다. 이에 상임금의 부인이 친정으로 도망가서 소강을 낳았으며, 소강은 각고분투하여 요와 희를 멸하고 다시 하나라를 부흥시켰다.

7.여(予)
  소강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여가 즉위하였다.

8.괴(槐)
  여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괴가 즉위하였다.

9.망(芒)
  괴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망이 즉위하였다.

10.설(泄)
  망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설이 즉위하였다.

11.불항(不降)
  설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불항이 즉위하였다.

12.경
  불항임금이 붕어하자 아우 경이 즉위하였다.

13.근
  경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근이 즉위하였다.

14.공갑(孔甲)
  근임금이 붕어하자 불항임금의 아들 공갑이 즉위하였다. 공갑임금은 즉위한 후 귀신을 좋아하였으며 음란하였다. 하후씨의 덕망은 이때부터 쇠퇴해져서 제후들이 배반하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두 마리의 용을 내려보냈는데 각각 암수 한 마리였다. 공갑임금은 용을 기를 줄 몰랐으며, 용을 기를 줄 아는 환룡씨도 구하지 못했다. 도당씨가 쇠망한 후에 유루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환룡씨에게서 용을 길들이는 법을 배웠으며 이로써 공갑임금을 섬겼다. 공갑임금은 그에게 어룡씨라는 성씨를 주고 시위(豕韋)의 후손의 봉지를 받게 하였다. 암컷 용 한마리가 죽자 유루는 공갑임금이 먹도록 하였다. 공갑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다시 용을 구해오라고 하자 유루는 두려워서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15.고(皐)
  공갑임금이 붕어하자 아들 고가 즉위하였다.
      

       


1.은(殷)나라의 시조 설
  은나라의 시조인 설의 어머니는 간적이다. 그녀는 유융씨 부족의 딸이며 제곡의 둘째 부인이었다. 간적 등 세 사람이 함께 목욕을 갔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설이다.
설은 장성하여 하나라 우의 치수산업을 도와서 공을 세웠다. 순이 설에게 "백관이 화친하지 않고 오품(五品)이 화목하지 못하니, 그대가 사도를 맡아서 오교(五敎)를 정중히 전파하고, 백성들을 너그럽게 감화시켜주시오"라고 명하였다. 순은 설에게 상(商)을 봉지로 내리고 자씨(子氏)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설은 요, 순, 우 시기에 등용되어 백관을 위해서 일했으므로, 그의 공적은 백관들 사이에 칭송되었고, 백관들은 안정을 얻게 되었다.

2.설에서부터 탕(湯)까지의 계보
  설 - 소명(昭明) - 상토(相土) - 창약(昌若) - 조어(曹어) - 명(冥) - 진(振) - 미(微) - 보정(報丁) - 보을(報乙) - 보병(報丙) - 주임(主壬) - 주계(主癸) - 천을(天乙), 성탕(成湯)

3.성탕(成湯)
  하나라의 걸왕이 포악한 정치를 하며 주색에 빠져 지내자, 제후국인 곤오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탕이 군대를 일으키고 제후들을 인솔하니 이윤(탕의 신하)도 함께 따라나갔고, 탕은 직접 도끼를 들고 곤오를 정벌하고 나서 걸왕까지 정벌하고자 하였다. 탕은 탕서(湯誓)를 지었는데, 그 때 탕이 "나는 무용(武勇)이 뛰어나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를 무왕(武王)이라고 칭했다.
  걸왕이 유융의 허(虛)에서 패하여 명조로 달아나자 하군이 지리멸렬해졌다. 탕이 삼종(당시 걸왕에게 충성하던 제후국)을 정벌하여 많은 보물들을 획득하자 탕의 신하인 의백과 중백이 보전(寶典)편을 지었다. 탕이 하를 정벌한 다음, 하의 신사(神社)를 옮기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하사(夏社)편을 지었다. 이윤이 바른 정치를 공포하자 제후들이 모두 복종하였고, 드디어 탕이 천자의 지위에 올라 전국을 평정하였다.
  탕이 역법을 개정하고, 복색을 바꾸어 백색을 숭상하였으며 조회를 낮에 하기로 결정하였다.

4.외병제(外丙帝)
  탕이 붕어했을 때 태자(太子) 태정(太丁)이 즉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태정의 동생인 외병이 즉위하니, 이 이가 바로 외병제이다.

5.중임제(中壬帝)
  외병제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외병제의 동생 중임이 즉위하여 중임제가 되었다.

6.태갑제(太甲帝), 태종(太宗)
  중임제가 즉위한 지 4년 만에 붕어하자 이윤(탕의 신하)은 태정의 아들 태갑을 즉위 시켰다. 태갑은 성탕의 직계 장손으로 태갑제가 되었다. 태갑제가 즉위한 지 3년이 되니 포악해져 탕의 법령을 지키지 않고 도덕을 문란하게 하자, 이윤이 그를 동궁(桐宮)으로 내쫒고 3년 동안 섭정하면서 제후들의 조회를 받았다. 태갑제가 3년 동안 동궁에 머물면서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자, 이윤은 태갑제를 영접하여 그에게 정권을 되돌려주었다. 태갑제가 덕을 수양하니 제후들이 모두 은에 복종하게 되었고, 백성들도 평안하게 되었다. 이에 이윤이 태갑제의 공적을 칭송하기 위해서 태갑훈 3편을 지었고, 태갑제를 기리어 태종(太宗)이라고 칭했다.

7.옥정제(沃丁帝)
  태종이 붕어하자 아들 옥정이 즉위하였다.

8.태경제(太庚帝)
  옥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태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태경제이다.

9.소갑제(小甲帝)
  태경제가 붕어하자 아들 소갑이 즉위하였다.

10.옹기제(雍己帝)
  소갑제가 붕어하자 동생 옹기가 즉우하니, 그가 바로 옹기제이다. 은 왕조의 국세가 쇠해지자 제후들 가운데 조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가 생겼다.

11.태무제(太戊帝), 중종(中宗)
  옹기제가 붕어하고 동생 태무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태무제이다. 태무제는 즉위하여 이척을 재상으로 삼았다. 박에서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자라기 시작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한아름이 넘게커지는 불길한 일이 일어나서, 태무제가 두려워서 이척에게 그 영문을 물어보았다. 이척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자니 요사스러움도 덕행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옵니다. 임금께서 행하신 정치에 잘못은 없었는지요? 임금께서는 덕행의 수양에 힘쓰십시오" 라고 아뢰었다. 태무제가 이척의 말대로 하자 불길한 징조인 뽕나무가 말라서 죽었다. 이척은 무함에게 모든 공을 돌려서 그럴 칭찬하였다. 무함은 왕가의 사무를 잘 처리하였으며 함애와 태무를 지었다. 태무제가 태묘(太廟)에서 이척을 칭송하면서 그를 신하 이상으로 대우하려고 하자 이척이 사양하고 원명을 지었다. 태무제의 대에 와서 은나라가 다시 흥하게 되어 제후들이 은나라에 복종하게 되었기에 태무제를 중종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12.중정제(中丁帝)
  중종이 붕어하자 아들 중정이 즉위하였다. 중정제는 오로 천도하였다. 중정제 이후로 적자계승제가 폐지되고 형제와 형제의 아들로 제위를 계승하니, 제위계승 문제로 서로 다투게 되어 이후 구세(九世)동안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에 제후들이 조회하러 오지 않게 되었다.

13.외임제(外壬帝)
  중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외임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외임제이다.

14.하단갑제(河亶甲帝)
  외임제가 죽자 동생 하단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하단갑제이다. 그는 상(相)으로 천도하였다. 하단갑제 시기에 은의 정치는 다시 쇠락해졌다.

15.조을제(祖乙帝)
  하단갑제가 붕어하자 아들 조을이 즉위했는데, 조을제가 즉위하자 은 왕조는 다시 부흥하였다. 형(刑)으로 천도하였다.

16.조신제(祖辛帝)
  조을제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조신이 즉위하였다.

17.옥갑제(沃甲帝)
  조신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옥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옥갑제이다.

18.조정제(祖丁帝)
  옥갑제가 붕어하자 옥갑의 형 조신의 아들이 조정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조정제이다.

19.남경제(南庚帝)
  조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옥갑제의 아들인 사촌동생 남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남경제이다.

20.양갑제(陽甲帝)
  남경제가 붕어하자 조정제의 아들인 양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양갑제이다. 양갑제 때에 이르러 은나라가 다시 쇠퇴하였다.

21.반경제(盤庚帝)
  양갑제가 붕어하자 동생인 반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반경제이다. 반경제 시기에 은 왕조는 이미 하북에 도읍했는데, 반경제는 다시 하남으로 천도하여 성탕의 옛 도읍에 거주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은 왕조는 이미 다섯 처례나 천도하면서 정해진 거처가 없었기에 은의 백성들은 모두 걱정하고 원망하며 또다시이동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반경제가 제후와 대신들을 타일렀다. "예전 고후이셨던 성탕과 그대들의 선조들께서 함께 힘을 모아 천하를 평정하셨는데, 그분들이 제정한 법도는 따를 수 있는 것이었소. 그런데 지금 선왕의 법도를 저버리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덕정을 이룰 수 있겠소?" 이에 하남으로 옮기어 박을 정돈하고 탕의 법령을 시행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되었고, 은 왕조의 국운이 다시 흥하게 되었다. 제후들이 모두 입조하게 된 것은 반경제가 성탕의 덕정을 따랏기 때문이었다.

22.소신제(小辛帝)
  반경제가 붕어하자 동생 소신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소신제이다. 그러나 소신제가 즉위한 후 은나라가 다시 쇠락해지자 백성들은 반경을 사모하며 반경 3편을 지었다.

23.소을제(小乙帝)
  소신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소을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소을제이다.

24.무정제(武丁帝), 고종(高宗)
  소을제가 붕어하자 아들 무정이 즉위했는데, 무정제는 부열을 등용하고, 정사를 바로잡으며 은덕을 베푸니 천하으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 하고, 은나라 국운이 다시 흥하게 되었다.

25.조기제(祖己帝)
  무정제가 붕어하자 아들 조기가 즉위하였다. 조기는 무정제가 꿩이 정(鼎)의 손잡이에 날아들어 울었던 일을 계기로 삼아 덕정을 베푼 일을 기리기 위하여 그를 고종이라고 칭하고 고종융일과 고종지훈을 지었다.

26.조경제(祖庚帝)
  조기제가 붕어하자 동생 조경이 즉위하였다.

27.갑제(甲帝)
  조경제가 붕어하여 동생 조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갑제이다. 갑제는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으므로 은왕조가 다시 쇠하게 되었다.

28.늠신제(凜辛帝)
  갑제가 세상을 떠나니 아들 늠신이 즉위하였다.

29.경정제(庚丁帝)
  늠신제가 붕어하자 동생 경정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경정제이다.

30.무을제(武乙帝)
  경정제가 죽자 아들 무을이 즉위했는데, 이때 은은 다시 박을 떠나서 하북으로 천도하였다. 무을제는 무도하여 우상을 만들고 이를 천신(天神)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상과 도박을 하면서 옆 사람에게 심판을 보게 하고는 천신이 지면 천신을 모욕하였다. 또한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피를 가득 채우고 높이 매달아 활로 쏘고서 이를 사천(射天)이라고 명명하였다. 무을제는 황하와 위수 사이를 수렵을 갔다가 갑자기 천둥이 치자 그 소리에 놀라서 죽고 말았다.

31.태정제(太丁帝)
  무을제가 죽자 아들 태정이 즉위하였다.

32.을제(乙帝)
  태정제가 붕어하자 아들 을이 즉위하였다. 을제가 즉위하자 은 왕조는 더욱 쇠퇴해졌다.

33.신제(辛帝), 주제(紂帝)
  을제의 큰아들은 계(啓)였으나, 계의 모친이 정후(正后)가 아니었기 때문에 태자가 되지 못했다. 작은 아들은 이름이 신이었 는데, 그의 모친이 을제의 정후였기 때문에 그가 태자가 되었다. 을제가 붕어하자 아들 신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신제이고, 세상에서는 그를 '주'라고 부른다.
  주제는 타고난 바탕이 총명하고 말재간이 뛰었났을 뿐만 아니라 일처리가 신속하며, 힘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서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혜는 신하으 간언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으며,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신하들에게 과시하여 천하에 그의 명성을 드높이려고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 못하다가 여겼다. 술과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했으며, 여자를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를 총해하여 그녀의 말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그는 사연에게 음탕한 악곡을 작곡하게 하고, 북리(기녀원)에서 추는 것 같은 저속한 춤고 음탕하고 퇴폐적인 가락을 새로 만들도록 하였다.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조가성에 쌓은 높은 단)를 돈으로 채우고 거교(지명)를 곡식으로 채우게 하였다. 게다가 여기 저기서 개와 말, 기이한 애완무을 수집하여 궁실을 가득 메웠다. 사구(지명)의 원대를 크게 확장하여 여러가지 야수와 새들을 자아다가 이곳에 풀어놓았다. 주는 귀신도 우습게 알았다. 또한 사구에 수많은 악공들과 광대들을 불러들이고 술로 연못을 만들고,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처럼 고기를 매달아 놓고서 벌거벗은 남녀들이 그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이새도록 술을 마시며 놓았다.  주가 포악해지자 제후들이 그를 떠났고, 주(周)의 무왕(武王)에 의해 정벌당하고, 스스로 불 속으로 뒤어들어 자살하였다. 무왕은 달기를 처형하고, 주에 의해 갇힌 기자를 풀어줬으며 주의 아들 녹보무경에게 봉토를 나누어주어 주어 은나라의 제사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이에 주나라의 무왕이 천자가 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군주를 제(帝)라고 부르지 않고 왕(王)으로 낮추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