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文 1770 윤구

序文 1850 용구

序文 1880 우진

序文 1902 이중린

序文 1934 영래

序文 1976 영종

序文 2002 한문

 

  평해황 인명록

東海의 푸른 바다와 月松亭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平海月松里는 중국 後漢(光武帝)의 學士를 지내시던 都始祖 諱:洛이 漂着하신지 이천여년의 유구한 세월동안 깊은 뿌리를 내리고 동해의 발원지에 齋室을 짓고, 設壇을 保衛한 것이 越松壇이다. 子孫이 繁昌하여 70여만명에 이르러 越松壇이 狹小해졌고, 祠堂이 不在한터라 2001년 祭享日에 都始祖 遺蹟地 聖域化 사업의 施工式을 擧行하여 越松壇을 擴張하고 祠堂을 新築하고 있는 것은 黃氏宗親의 光榮이요 子孫萬代 길이 자랑할 文化遺産의 歷史資料가 될 것이다. 家牒을 編纂하는 일 또한 祖上의 德을 기리고 子孫萬代 이어질 역사적 史料이기에 종장님들의 意見을 收斂하고 丙辰譜이전 14차례 發刊된 家牒을 참고로 情報化 時代에 걸 맞는 壬午譜를 編纂하는데 最善을 다하였다.

우리 家門은 고려시대 門下侍中을 지낸 諱:裕中, 僉議評理를 지낸 諱:瑞, 寧海府使를 지낸 諱:原老, 工曹判書를 지낸 諱:有定 등을 비롯한 여러 선조들이 國政을 보살피고, 나라에 공을 세웠다. 고려조와 조선조에 수많은 功臣과 及第한 선조를 배출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人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諱:銓은 지평을 歷任했고, 諱:鉉은 태종과 세종대에 대사성을 지냈으며, 仁壽府尹과 行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였는데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그를 “經書에 밝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 세상의 사표가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諱:玎(號:不倦軒)은 정원강시에서 장원하여 성종으로부터 말 한 필을 하사받았고, 성균관 전적과 시강원 찬독관을 거쳐 통훈대부가 되었다. 諱:俊良은 재기가 탁월하고 글을 잘 지어 退溪先生과 깊이 있는 학문을 논하였고, (《조선왕조실록》 명종 26년, 《退溪集》) 新寧縣監․星州牧使 시절에 보인 치적 그리고 제자들과의 講論 등이 《牧民心書》에 관리들의 모범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家門에는 200여명의 벼슬한 선조들이 백성의 칭송을 받았다.

家門의 象徵이자 선조들의 綿綿한 숨결이 담긴 족보는 집에 불이 나거나 戰亂속에서도  족보부터 챙겼고, 목숨보다 소중히 가문의 脈을 밝혀온 선조들의 위업을 이어받아 문중의 文獻을 잘 보존하여 後孫에게 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 여겨진다. 족보는 문중의 역사이니 기회 있을 때마다 틀린 곳을 고치고, 빠진 곳을 더하여 가문의 來歷를 온전히 再現하는 것도 소중히 갈무리하는 일만큼이나 중차대한 일이거늘 丙辰年(1976년)에 평해 황씨 大同譜를 낸 이후로 家牒을 제대로 보수하지 못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1개월은 지난날의 1년에 버금가며, 세상의 빠른 변화가 사람들의 관심거리까지 분산시키는지 조상의 행적을 살피고 그 얼을 이어 받아 삶의 지표로 삼으려는 노력은 후대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는 듯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위기감도 우리가 족보 편찬을 서두르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은 이 가첩을 통해 우리 家系의 영속성을 認識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지역, 사회, 국가, 세계로 발돋움하는 橋頭堡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집에 앉아서 전 세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國際化․情報化 시대가 도래 했지만 세계를 향한 飛翔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 든든한 디딤발을 두어야만 可能한 일이다. 지구촌 방방곡곡이 인터넷 정보망으로 연결되어있고 세계가 한울타리의 카테고리 속으로 연결되는 추세에 발맞추어 종친들이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진출하여 역량을 發揮하고 있는 현실에 부응하여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www.hwang.or.kr )하였으며 실시간으로 채팅을 할 수 있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선조들의 文化遺産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SYSTEM을 갖추었다. 壬午譜간행은 선조들의 숭고한 얼을 본받으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다음과 같은 編制上의 특징을 가진다. 첫째, 역사적 사실을 기록함에 있어 ‘영조 某年’과 같은 年代記를 모두 현재 사용하고 있는 西紀로 통일하여 선명한 이해를 도우고자 하였다. 둘째, 가족간의 유대의식을 강화하고 가계의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기 위하여 子女를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셋째, 후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行狀과 墓碑銘등의 한글 표기를 함께 싣고, 기존에 간행한 족보의 서문도 모두 번역하여 실었으며, 묘소,추원재,선정비 등의 사진 자료를 添附했다. 넷째, 지난날의 活字인쇄 방식이 지니던 번거로움을 피하고, 앞으로의 보완작업이 원활할 수 있도록 컴퓨터 족보편집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여 색인부에서 자신의 선조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貫鄕의 일은 靑史에 남는 일이기에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종친들의 불타는 사명감으로 才德을 兼備한 분들의 면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편찬위원회 실무를 총괄하여 始終 勞苦를 樂으로 삼아주신 族弟 永鳳, 族孫 東燮, 總務職을 맡아 2년여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한 族孫 武燮, 재무직을 수행한 族弟 永斗, 族孫 在鎬와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선인들의 간행 취지를 우리말로 꼼꼼하게 옮겨준 강원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在國께 심심한 感謝를 드리고, 全國에 散在해있는 선조들의 墓所와 추원재등의 사진을 촬영하여 編輯해준 族孫 秉極과 최신 족보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정성껏 전산화해 준 (주)가승미디어 전 직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기존 家牒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고치고, 이전의 族譜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가계, 후손들을 보태는데 전심전력을 다하였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보완되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家門의 구성원은 물론 江湖諸賢들의 叱正을 기다린다. 


壬午年    8月   後孫 漢紋 삼가 기록한다.

 黃門家 http://www.hwang.or.kr 이메일: hwangtot@naver.com 홈지기: 황병극(黃秉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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