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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전경

사당

제기고

충렬사 비각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21호
명   칭   충렬사(忠烈祠)
분   류   사묘재실
수   량   1동
지정일   1995.03.01
소재지   인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371
소유자   사유
관리자   충렬사재단

선원 김상용과 공조판서 이상길 외 26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김상용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인천이 청나라 군사에게 함락되자 순절한 충신이다. 인조 19년(1641)에 지어 현충사라 불렀으나, 효종 9년(1658)에 나라에서 충렬사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다. 1977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사당과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 출입문인 외삼문 등이 남아있다.
이 사당은 조선(朝鮮)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종묘(宗廟)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청군(淸軍)이 이곳을 함락하자 남문루(南門樓) 위에서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절(殉節)한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선생을 주향(主享)으로 하고, 배향(配享)으로는 공조판서(工曹判書) 이상길(李尙吉) 외 26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인조 19년(1641)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명명하였던 것을 유수(留守) 허휘(許徽)가 효종(孝宗) 9년(1658)에 충렬사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齋)는 없어지고 현존 건물로는 한식목조(韓式木造) 맞배지붕 와가(瓦家)로 2익공(二翼工) 겹처마로 된 14평의 사당(祠堂)과, 16평의 수직방(守直房), 14평의 전사청(典祀廳), 비각(碑閣),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1977년에 보수 정화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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